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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공화국·고랜드 민주공화국의 조약
벨포르 협정
توافقنامه بلفور
Belfort Agreement
Бельфорское соглашение
정식 명칭
루이나 공화국과 고랜드 민주공화국 간의 테러 조직의 격멸을 위한 공동 행동과 민족 화해에 관한 협정
약칭
벨포르 협정
체결
2001년 12월 5일
벨포르 대통령궁
발효
2002년 1월 19일
서명자
로널드 캘러핸
루이나 대통령
무함마드 나지불라
고랜드 민주공화국 대통령
미하일 인터루쇼프
사비에트 최고인민평의회 주석 (부속 의정서)
당사국
루이나 공화국 · 고랜드 민주공화국
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부속 의정서)
유효기간
기한 없음
소관
루이나 외무부 · 고랜드 민주공화국 외무부
구성
전문, 본문 17개조
사비에트 부속 의정서
비공개 합의의사록
정본 언어
영어, 다리어, 파슈토어

1. 개요2. 명칭과 지위3. 체결 경위
3.1. 배경3.2. 교섭3.3. 서명과 발효
4. 구성5. 조문
5.1. 전문5.2. 제1조 (목적)5.3. 제2조 (정의)5.4. 제3조 (승인)5.5. 제4조 (국가 체제의 존중)5.6. 제5조 (공동의 적)5.7. 제6조 (단독 합의의 금지)5.8. 제7조 (공동 작전)5.9. 제8조 (주둔과 시설)5.10. 제9조 (지원)5.11. 제10조 (억류자의 처우)5.12. 제11조 (민족 화해 과도기)5.13. 제12조 (마약)5.14. 제13조 (국제안보지원군과 제3국)5.15. 제14조 (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참여)5.16. 제15조 (협의)5.17. 제16조 (유효기간과 종료)5.18. 제17조 (비준, 발효, 정본)
6. 부속 문서
6.1. 사비에트 부속 의정서6.2. 비공개 합의의사록
6.2.1. 폭로
7. 추가 약정과 재확인8. 쟁점
8.1. 2019년 철수 발표와 협정의 정신8.2. 제9조와 정치위원 조항8.3. 제6조와 벨포르의 덫8.4. 비공개 합의의사록과 의회 동의8.5. 2021년 이후의 승인 문제
9. 평가10. 여담


1. 개요 [편집]

벨포르 협정은 2001년 12월 5일 루이나의 수도 벨포르에서 루이나 공화국과 고랜드 민주공화국이 체결한 조약이다. 두 나라는 알자미아와 이를 비호하는 탈레반을 공동의 적으로 규정하고 함께 싸우기로 했으며, 루이나는 그 대가로 고랜드 민주공화국 정부를 고랜드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고 그 국가 체제의 변경을 요구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고랜드 민주공화국의 후원국인 사비에트는 부속 의정서에 서명해 탈레반과 알자미아에 대한 모든 지원과 교역을 끊었다.

협정은 1.19 사건으로부터 열한 달 가까이 지나, 루이나-고랜드 전쟁 개전으로부터 두 달 만에 맺어졌다. 1980년대 사비에트-고랜드 전쟁에서 이 공산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무자헤딘을 무장시켰던 루이나가 바로 그 정권과 동맹을 맺은 것이어서, 냉전이 끝나지 않은 세계에서 가장 역설적인 조약으로 꼽힌다. 루이나 정부가 오늘날까지 공식 문서에서 이 정부를 「고랜드 과도 민주정부」라고 부르는 것도 협정 제11조의 「민족 화해 과도기」에서 나온 이름이다.

협정에는 유효기간이 없고, 루이나군의 주둔 의무도 없다. 이 때문에 2019년 루이나의 일방적인 전면 철수 발표는 협정 위반은 아니었지만 협정의 정신을 저버린 것이라는 논란을 불렀다. 협정은 공개된 본문과 사비에트 부속 의정서 외에 비공개 합의의사록을 두고 있었는데, 포로 인도와 사비에트의 광물 이권 같은 민감한 약속을 담은 이 문서의 존재는 2012년 《아르시브》의 보도로 드러났다. 협정은 지금도 효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2021년 탈레반의 아바나 재점령 이후에도 루이나가 탈레반 정부를 승인하지 않고 2022년 국제안보지원군을 다시 보낸 법적 근거가 되었다.

2. 명칭과 지위 [편집]

정식 명칭은 「루이나 공화국과 고랜드 민주공화국 간의 테러 조직의 격멸을 위한 공동 행동과 민족 화해에 관한 협정」이다. 서명 장소를 따 「벨포르 협정」이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명 장소를 벨포르로 정한 것은 루이나 측의 요구였다. 1.19 사건의 현장에서 협정을 맺음으로써 이 동맹이 공산 정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희생자들을 위한 것임을 국내에 보여 주려는 계산이었다.

고랜드 정부는 공식 문서에서 「벨포르 조약」이라고 부르며, 탈레반은 「벨포르의 배교 계약」이라고 부른다. 루이나 보수 언론 일부는 협정 공개 직후 「붉은 별 협정」이라는 멸칭을 쓰기도 했다.

루이나 국내법상 이 협정은 상원의 비준 동의를 거친 조약이다. 반면 비공개 합의의사록은 상원에 제출되지 않았고, 캘러핸 정부는 이를 협정의 이행을 위한 행정 약정으로 분류했다. 이 분류가 정당했는지는 2012년 합의의사록이 공개된 뒤 큰 쟁점이 되었다.

3. 체결 경위 [편집]

3.1. 배경 [편집]

상세 내용은 루이나-고랜드 전쟁 문서 참고.


1996년 탈레반이 아바나를 점령한 뒤 고랜드 민주공화국 정부는 북부 마자르이샤리프로 물러나 국토의 10~15%를 지키고 있었다. 루이나는 이 정부를 여전히 적성 정권으로 보았고, 1991년 무기 지원 중단 이후 사비에트와 공산 정부의 관계도 냉랭했다. 사비에트는 남부 국경의 안정과 교역을 위해 탈레반과 실무적인 거래를 이어 갔고, 루이나 NIA는 "당장의 적은 공산주의"라는 논리로 탈레반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기까지 했다.

2001년 1월 19일 탈레반의 비호를 받던 알자미아가 벨포르에서 1.19 사건을 일으켜 2,908명이 숨졌다. 탈레반이 알자미아 지도자 이브라힘 나쉬디의 인도를 거부하자 루이나는 군사 행동을 결심했지만, 고랜드 땅에서 함께 싸울 지상 세력이 없었다. 루이나가 부담 없이 손잡을 수 있었던 반공 무자헤딘 지도자 아흐마드 샤 마수드는 1.19 이틀 전 알자미아에 암살당했다. 남은 것은 북부의 공산 정부와 그 동맹인 압둘 라시드 도스툼의 민병대였다. 공산 정부는 5년 동안 탈레반과 싸워 온 병력과 사비에트제 장비, 그리고 루이나의 해상 보급로가 닿을 수 있는 고랜드의 유일한 대외 항구 하이라탄항을 쥐고 있었다.

3.2. 교섭 [편집]

교섭은 사비에트를 창구로 시작되었다. 2001년 3월 NIA 부국장이 사비에트 국경 도시 테르미스크에서 사비에트 KGB 관계자를 만나 공산 정부와의 접촉을 타진했고, 4월 테르미스크 국경경비대 영빈관에서 루이나와 고랜드 공산 정부, 사비에트의 첫 3자 비밀 회담이 열렸다. 루이나 대표단은 NIA와 외무부, 합동참모본부 인사 7명으로 꾸려졌고, 고랜드 측은 외무장관 압둘 와킬이 이끌었다. 8월까지 여섯 차례 이어진 이 회담을 「테르미스크 교섭」이라 부른다.

교섭은 대부분 러시아어로 진행되었다. 사비에트에서 교육받은 고랜드 대표단에게 가장 편한 외국어가 러시아어였고, 루이나 대표단에도 러시아어 능통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이나는 러시아어를 정본 언어로 넣자는 사비에트의 제안을 거부했고, 결국 러시아어는 사비에트 부속 의정서의 정본 언어에만 들어갔다.

쟁점은 크게 네 가지였다.

* 체제 보장: 고랜드 측은 루이나가 사회주의 체제를 인정하고 체제 변경을 목적으로 한 어떤 활동도 지원하지 않겠다는 문서상 약속을 요구했다. 루이나는 처음에 "탈레반 이후의 정치 질서는 고랜드인이 정한다"는 표현을 제안했으나, 고랜드 측은 이를 1980년대의 재판으로 보고 거부했다. 결국 본문에는 "헌법이 정한 국가 체제"라는 표현을 쓰고, "사회주의"라는 단어는 비공개 합의의사록에만 넣는 것으로 타협했다.
* 사비에트의 몫: 사비에트는 탈레반과의 거래를 끊는 대가로 루이나군이 사비에트 국경과 맞닿은 북부 주에 상설 기지를 두지 않을 것, 1978~1989년 사비에트 기업이 맺은 고랜드 광물 개발 계약의 효력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두 요구는 모두 비공개 합의의사록에 들어갔다.
* 화해 조항: 루이나는 국내 여론을 설득할 명분으로 탈레반 축출 이후 무자헤딘 출신 세력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는 조항을 요구했다. 고랜드 측은 일당제를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 이를 받아들였고, 참여 방식을 고랜드 헌법과 법률에 맡긴다는 단서를 붙였다. 이것이 제11조의 「민족 화해 과도기」다.
* 루이나의 의무: 고랜드 측은 루이나가 일정 규모 이상의 병력을 탈레반 격멸 때까지 주둔시킨다는 조항을 원했다. 루이나는 의회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거부했고, 협력의 방식과 규모는 각 당사국이 스스로 정한다는 제5조 제2항이 들어갔다. 18년 뒤 이 조항은 루이나의 전면 철수를 합법으로 만든 근거가 되었다.

국기를 둘러싼 신경전도 있었다. 루이나 대표단은 고랜드 국기의 붉은 별을 빼 달라고 요구했으나 고랜드 측은 "우리는 별을 달고 5년을 버텼다"며 거부했다. 양측은 공동 작전에 참여하는 부대가 각자의 국기 대신 별도의 공동 표지를 쓸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절충했고, 이는 제7조 제4항이 되었다.

교섭은 루이나의 정권 교체 때문에 더 길어졌다. 퇴임을 앞둔 클라렌스 J. 발렌타인 정부는 공산 정권과의 동맹이라는 부담을 떠안기를 꺼렸고, 대통령 당선인 로널드 캘러핸 측은 자신이 서명하지 않은 약속에 묶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결국 8월 28일 NIA 국장과 압둘 와킬 외무장관이 마자르이샤리프에서 교섭 결과를 정리한 「마자르 각서」에 가서명했고, 사비에트는 구두로 보증했다. 9월 캘러핸이 취임한 뒤 루이나는 10월 9일 공습을 시작했고, 공산 정부군은 11월 13일 아바나를 되찾았다. 마자르 각서를 조약문으로 다듬는 작업은 공습과 동시에 진행되었다.

3.3. 서명과 발효 [편집]

2001년 12월 5일 벨포르 대통령궁에서 서명식이 열렸다. 대통령궁은 1.19 사건 당일 NA145편이 노렸던 곳이다. 캘러핸과 고랜드 민주공화국 대통령 무함마드 나지불라가 본문에 서명했고, 사비에트 최고인민평의회 주석 미하일 인터루쇼프가 부속 의정서에 서명했다. 비공개 합의의사록은 같은 날 오후 양국 외무장관이 별실에서 서명했다.

캘러핸은 서명식에서 "우리는 1.19의 희생자들에게 정의를 약속했지, 1980년대의 전쟁을 다시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지불라는 1992년 무자헤딘의 포위 속에서 아바나를 지켰던 일을 언급하며 "우리는 한 번도 이 싸움을 멈춘 적이 없다. 이제 세상이 우리 편에 섰을 뿐이다"라고 답했다. 루이나 대통령과 사비에트 최고지도자가 같은 서명식 탁자에 앉은 사진은 이튿날 루이나와 사비에트의 거의 모든 신문 1면에 실렸다.

국내 반응은 엇갈렸다. 보수 진영의 《르 나시오날》은 "붉은 별과의 결혼"이라고 비난했고, 진보 진영의 《라 부아》는 NIA가 1990년대 탈레반을 간접 지원했던 과거부터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1980년대 무자헤딘 지원에 관여했던 전직 NIA 간부들은 공개서한을 내 "우리가 무기를 쥐여 준 사람들을 이제 우리가 쏘게 되었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1.19 이후의 여론은 알자미아를 잡는 일이 먼저라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루이나 상원은 12월 18일 찬성 71표, 반대 26표로 비준에 동의했다. 반대표의 대부분은 반공 성향의 보수파 의원들에게서 나왔다. 고랜드 민주공화국 국민회의 상임위원회는 12월 12일, 사비에트 최고인민평의회 상임간부회는 12월 14일 각각 비준했다. 비준서는 12월 20일 교환되었고, 협정은 제17조에 따라 30일 뒤인 2002년 1월 19일, 1.19 사건 1주기에 발효되었다. 발효일은 비준서 교환일을 조정해 일부러 맞춘 것이다.

4. 구성 [편집]

구성
내용
공개
전문
체결 취지
공개
본문
17개조
공개
사비에트 부속 의정서
6개조
공개
비공개 합의의사록
7개항
2012년 폭로

5. 조문 [편집]

5.1. 전문 [편집]

전문
루이나 공화국과 고랜드 민주공화국(이하 "당사국"이라 한다)은,
2001년 1월 19일 벨포르에서 자행된 테러로 무고한 생명 2,891명이 희생된 것을 깊이 애도하고,
그 테러를 계획하고 실행한 조직과 그 조직에 은신처를 제공한 세력이 두 나라 국민 공동의 적임을 확인하며,
1996년 이래 고랜드의 수도와 국토를 불법으로 점거한 무장 세력에 맞서 고랜드 민주공화국 정부와 국민이 기울여 온 노력을 인정하고,
각국 국민이 스스로 선택한 국가 체제와 주권, 영토 보전, 내정 불간섭의 원칙을 존중하며,
고랜드 국민이 민족 화해를 통하여 항구적인 평화를 이루기를 바라,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희생자 수를 1.19 사건 전체 사망자 2,908명이 아니라 민간인 2,891명으로 적은 것은 범인 17명을 추모 대상에서 빼기 위해서였다. 셋째 문단의 "1996년 이래 ... 불법으로 점거한" 이라는 표현은 고랜드 측의 요구로 들어갔다. 탈레반의 아바나 점령을 불법 점거로 못박아 공산 정부의 정통성을 조약문으로 확인받으려는 것이었고, 루이나는 그 대신 1.19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전문 맨 앞에 두는 것으로 균형을 맞췄다.

"각국 국민이 스스로 선택한 국가 체제"라는 구절은 제4조의 전제가 되는 문장이다. 공산 정권이 고랜드 국민의 "선택"이었다는 표현에 루이나 보수 진영은 강하게 반발했으나, 루이나 외무부는 "각국"이라는 말이 루이나의 체제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일반 원칙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5.2. 제1조 (목적) [편집]

제1조(목적)
이 협정은 테러 조직과 이를 비호하는 세력을 격멸하고 고랜드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기 위하여 당사국이 함께 취할 행동과 그 원칙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협정의 목적을 테러 조직의 격멸과 고랜드의 평화 회복 두 가지로 정했다. 루이나는 앞의 것을, 고랜드는 뒤의 것을 원했다. "국가 재건"이나 "민주주의" 같은 표현은 어느 쪽도 원하지 않아 들어가지 않았다.

5.3. 제2조 (정의) [편집]

제2조(정의)
이 협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테러 조직"이란 알자미아(알후라 알자미아)와 그 산하 조직, 그리고 당사국이 합의하여 별표에 등재한 조직을 말한다.
2. "탈레반"이란 1996년 9월 27일 이후 아바나를 점거하고 이른바 「고랜드 이슬람 토후국」을 칭한 무장 세력과 그 후신을 말한다.
3. "공동 작전"이란 제7조에 따라 당사국의 군대가 함께 계획하거나 수행하는 군사 작전을 말한다.
4. "국제안보지원군"이란 국제연합의 결의에 따라 고랜드에 파견되는 다국적 군대를 말한다.
5. "민족 화해 과도기"란 제11조에 따라 고랜드 민주공화국 정부가 선포하는 기간을 말한다.


제1호의 별표는 교환각서만으로 고칠 수 있게 되어 있어, 새로운 조직이 등장할 때마다 조약 개정 없이 적의 범위를 넓힐 수 있었다. 2015년 알 카흐프 여단이 이 방식으로 별표에 추가되었다.

제2호의 "그 후신"이라는 표현 덕분에 2021년 탈레반이 아바나를 다시 점령하고 토후국의 재건을 선포했을 때에도 협정의 적용 대상을 두고 다툼이 생기지 않았다. 제4호는 국제안보지원군 창설을 승인한 유엔 결의(2001년 12월 20일)보다 보름 먼저 쓰인 것이어서, 결의의 채택을 전제로 한 문장이다.

5.4. 제3조 (승인) [편집]

제3조(승인)
① 루이나 공화국은 고랜드 민주공화국 정부를 고랜드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한다.
② 루이나 공화국은 고랜드 영역 안의 어떠한 무장 세력도 고랜드의 정부 또는 교전단체로 승인하지 아니한다.
③ 당사국은 국제연합과 그 밖의 국제기구에서 고랜드 민주공화국 정부의 대표권을 지지한다.


루이나는 1980년 아바나 주재 대사관을 폐쇄한 뒤 고랜드 민주공화국 정부와 사실상 관계를 끊고 있었다. 제1항으로 두 나라의 외교 관계는 21년 만에 정상화되었고, 2002년 3월 아바나의 루이나 대사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제2항은 처음에는 잘 눈에 띄지 않는 조항이었으나 2021년 이후 협정의 핵심 조항이 되었다. 탈레반이 아바나를 다시 점령하자 루이나 안에서는 인도적 지원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탈레반 정부를 사실상의 정부로 인정하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루이나 정부는 이 조항을 들어 거부했다. 탈레반을 승인하려면 협정을 먼저 종료해야 했고, 협정을 종료하면 사비에트의 부속 의정서도 함께 효력을 잃게 되어 있었다. 제3항에 따라 루이나는 1996~2001년에도, 2021년 이후에도 고랜드 민주공화국 정부의 유엔 의석을 지지했다.

5.5. 제4조 (국가 체제의 존중) [편집]

제4조(국가 체제의 존중)
① 루이나 공화국은 고랜드 민주공화국 헌법이 정한 국가 체제와 사회제도를 존중하며, 그 변경을 요구하지 아니한다.
② 루이나 공화국은 고랜드 민주공화국의 국가 체제 변경을 목적으로 하는 개인, 단체 또는 무장 세력에 자금, 무기, 훈련 그 밖의 어떠한 지원도 제공하지 아니하며, 자국 영역이 그러한 목적에 이용되지 않도록 한다.
③ 고랜드 민주공화국은 루이나 공화국의 헌정 질서를 존중하며, 루이나 공화국 안의 어떠한 정치 세력에도 지원을 제공하지 아니한다.


협정의 심장부로 불리는 조항이다. 1980년대 무자헤딘에게 무기를 대 고랜드 민주공화국을 무너뜨리려 했던 루이나가 그 체제의 변경을 요구하지도, 그런 활동을 지원하지도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공개된 본문에는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루이나는 "헌법이 정한 국가 체제"라는 우회적 표현을 고집했고, 그것이 사회주의 체제와 인민민주당의 영도적 지위를 포함한다는 해석은 비공개 합의의사록 제1항에 따로 적었다.

제2항 후단의 "자국 영역이 그러한 목적에 이용되지 않도록 한다"는 문구는 루이나에 사는 반공 고랜드 망명자 단체를 겨냥한 것이었다. 1980년대부터 벨포르와 해안 도시들에서 무자헤딘을 위한 모금을 해 온 이 단체들은 별을 오려 낸 삼색기를 내걸고 협정 반대 집회를 열었고, 2002년 루이나 정부가 이들의 모금 허가를 취소하자 결사의 자유 침해라며 소송을 냈다. 루이나 법원은 2004년 외교 관계에 관한 정부의 재량을 인정해 정부의 손을 들어 주었다.

제3항은 루이나 측이 체면을 위해 넣은 상호주의 조항이다. 고랜드 민주공화국이 루이나 정치에 개입할 능력도 의사도 없었다는 점에서 실질적 의미는 거의 없었다.

5.6. 제5조 (공동의 적) [편집]

제5조(공동의 적)
① 당사국은 테러 조직과 탈레반을 공동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이 무장을 해제하고 해체될 때까지 그 격멸을 위하여 협력한다.
② 제1항에 따른 협력의 방식과 규모는 각 당사국이 자국의 헌법 절차에 따라 스스로 정한다.


제1항은 탈레반과 테러 조직이 무장을 해제하고 해체될 때까지라는 끝이 분명하지 않은 목표를 정했지만, 제2항은 그 목표를 위해 무엇을 얼마나 할지를 각국에 맡겼다. 고랜드 측은 일정 규모 이상의 루이나군을 탈레반 격멸 때까지 주둔시킨다는 문구를 원했으나, 루이나는 의회의 예산 권한을 이유로 거부했다.

이 조항은 2019년 루이나가 전면 철수를 발표했을 때 철수의 법적 근거가 되었다. 루이나 외무부는 "협정은 루이나에 싸움을 계속할 방식을 스스로 정할 권리를 주었고, 루이나는 그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고랜드 정부는 제1항의 "해체될 때까지"를 들어 반박했지만, 제2항의 문언 앞에서 법적 주장은 힘을 얻지 못했다.

5.7. 제6조 (단독 합의의 금지) [편집]

제6조(단독 합의의 금지)
어느 당사국도 다른 당사국의 동의 없이 테러 조직 또는 탈레반과 휴전, 강화, 항복의 수락, 그 밖의 정치적 합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고랜드 측이 가장 강하게 요구한 조항이다. 공산 정부는 루이나가 탈레반이나 남부 부족 세력과 따로 손잡고 자신들을 버릴 가능성을 가장 두려워했고, 이 조항으로 루이나의 손을 묶었다.

조항의 효력은 서명 직후 곧바로 나타났다. 12월 7일 탈레반 지도부 일부가 칸다하르를 넘기는 대가로 지도자들의 사면을 받는 조건부 항복을 타진했을 때, 고랜드 정부는 동의를 거부했고 루이나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협정은 아직 발효 전이었지만 양측은 이미 이 조항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이후 루이나는 2010년, 2013년, 2018년 세 차례 탈레반과의 예비 접촉에 대한 동의를 고랜드 정부에 구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루이나의 전쟁사 연구자들은 이 조항을 「벨포르의 덫」이라고 부른다. 루이나는 탈레반과 협상해 전쟁을 끝낼 수 없었고, 고랜드 정부를 설득할 수도 없었다. 남은 출구는 협상 없는 일방적 철수뿐이었다는 것이다. 2017년 출범한 정부가 탈레반과 마주 앉는 것 자체를 "벨포르 협정에 대한 배신"이라고 설명한 것도 이 조항 때문이다.

5.8. 제7조 (공동 작전) [편집]

제7조(공동 작전)
① 당사국의 군대는 테러 조직과 탈레반에 대하여 공동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② 공동 작전에 참여하는 각국 군대는 자국의 지휘 계통에 따른다.
③ 당사국은 공동 작전의 계획과 조정을 위하여 아바나에 공동작전조정본부를 둔다.
④ 공동 작전에 참여하는 부대는 당사국이 합의하여 정한 공동 표지를 사용할 수 있다.
⑤ 루이나 군대가 고랜드 영역 안에서 수행하는 작전은 공동작전조정본부에 사전에 통보한다. 다만, 급박한 경우에는 작전이 끝난 뒤 지체 없이 통보한다.


제2항은 어느 쪽 군대도 상대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했다. 루이나군 장교가 인민민주당 정치위원이 있는 부대를 지휘하는 일도, 루이나군이 고랜드 장성의 명령을 받는 일도 양국 모두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제3항의 공동작전조정본부는 2001년 12월 아바나 옛 국방부 청사에 문을 열었고, 루이나군과 고랜드 정부군, 뒤에는 ISAF 장교들이 함께 근무했다.

제4항의 공동 표지는 짙은 녹색 방패 바탕에 흰 산봉우리를 그린 것으로, 병사들은 흔히 「초록 방패」라고 불렀다. 루이나 대표단이 고랜드 국기의 붉은 별을 빼 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끝에 나온 절충안이다. 루이나군 부대는 공동 작전 때 루이나 국기 대신 이 표지를 달았고, 고랜드 정부군은 표지와 붉은 별 국기를 함께 다는 경우가 많았다.

제5항 단서의 "급박한 경우"는 협정 기간 내내 다툼의 대상이었다. 루이나군의 특수부대 야간 급습과 무인기 공습은 대부분 이 단서에 따라 사후에 통보되었고, 고랜드 정부는 해마다 벨포르 협의에서 사전 통보 비율이 낮다고 항의했다. 2011년 이브라힘 나쉬디 사살 작전은 유고랜드 영역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이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

5.9. 제8조 (주둔과 시설) [편집]

제8조(주둔과 시설)
① 고랜드 민주공화국은 루이나 군대와 국제안보지원군이 고랜드 영역 안에 주둔하고 필요한 시설과 구역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한다.
② 주둔하는 군대의 규모와 기간은 파견국이 정한다.
③ 루이나 군대의 지위와 시설·구역의 사용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별도의 협정으로 정한다.


제1항은 주둔을 "허용"할 뿐 루이나에 주둔을 요구하지 않으며, 제2항은 규모와 기간을 파견국이 정하게 했다. 제5조 제2항과 함께 루이나의 일방적 철수를 가능하게 한 조항이다. 제3항에 따라 두 나라는 2002년 5월 별도의 주둔군지위협정을 맺었다. 이 지위 협정에 따라 공무 중에 일어난 사건의 형사재판권은 루이나가 가졌다.

사비에트 국경과 맞닿은 북부 주에 상설 기지를 두지 않는다는 제한은 본문이 아니라 비공개 합의의사록 제2항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루이나군은 북부에서 작전할 때에도 마자르이샤리프 공항의 임시 시설과 순환 배치만을 이용했다.

5.10. 제9조 (지원) [편집]

제9조(지원)
① 루이나 공화국은 고랜드 민주공화국 군대의 훈련과 장비, 그 밖에 필요한 재정을 지원할 수 있다.
② 제1항의 지원은 당사국이 합의한 계획에 따르며, 그 사용에 관한 회계는 당사국이 공동으로 검증한다.


고랜드 측 초안은 "지원한다"였으나 루이나의 요구로 "지원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이 한 글자의 차이는 곧바로 현실이 되었다. 2002년 루이나 의회는 국방수권법에 공산당 조직이 지휘에 관여하는 군대에 대한 직접 무기 지원을 금지하는 이른바 「정치위원 조항」을 넣었고, 루이나의 지원은 2009년 이 조항이 폐지될 때까지 훈련과 비살상 장비, ISAF 신탁기금을 거친 간접 지원에 머물렀다.

제2항의 공동 회계 검증은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 고랜드 측은 당 조직과 국가보안부의 예산 자료를 공동 검증 대상에서 빼려 했고, 루이나 측은 검증 대신 자국 감사관을 늘리는 쪽을 택했다. 2008년 루이나가 고랜드 재건 특별감사관실을 만든 것도 이 조항이 제 기능을 못 했기 때문이다.

5.11. 제10조 (억류자의 처우) [편집]

제10조(억류자의 처우)
① 공동 작전 중에 붙잡힌 사람은 국제인도법에 따라 인도적으로 대우한다.
② 억류자의 인도와 관리에 관한 사항은 당사국이 따로 정한다.


협정 서명 직전인 2001년 11월, 쿤두즈에서 항복한 포로 수백 명이 도스툼 민병대의 시바르간 수용소로 이송되는 컨테이너 안에서 질식해 숨진 사건이 알려지면서, 루이나는 억류자 조항을 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제1항의 일반 원칙과 달리 실제 인도 절차를 정한 제2항의 "따로 정한" 문서는 비공개 합의의사록 제3항이었고, 이 문서는 루이나군이 붙잡은 고랜드인을 72시간 안에 고랜드 국가보안부에 넘기도록 했다.

5.12. 제11조 (민족 화해 과도기) [편집]

제11조(민족 화해 과도기)
① 고랜드 민주공화국 정부는 탈레반의 격멸 이후 민족 화해 과도기를 선포한다.
② 민족 화해 과도기 동안 고랜드 민주공화국 정부는 무기를 내려놓고 헌법을 존중하는 무자헤딘 출신 세력과 부족 지도자가 국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③ 제2항에 따른 참여의 방식과 범위는 고랜드 민주공화국의 헌법과 법률에 따른다.
④ 테러 조직의 구성원과 탈레반의 지도부는 제2항의 대상에서 제외한다.
⑤ 민족 화해 과도기의 종료는 고랜드 민주공화국 정부가 선포한다.


루이나가 국내 여론 앞에 내세운 명분 조항이다. 루이나는 이 조항을 근거로 공산 정권과의 동맹이 고랜드의 정치적 개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루이나 정부가 공식 문서에서 고랜드 정부를 「과도 민주정부」라고 부르게 된 것도 이 조항의 "과도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제3항은 참여의 방식을 고랜드 헌법과 법률에 맡겼고, 고랜드 정부는 이를 통일전선 방식으로 풀었다. 고랜드 정부는 2002년 6월 아바나에서 「민족 화해 회의」를 열어 과도기를 선포했고, 무자헤딘 출신 세력은 인민민주당의 통일전선 조직인 「민족조국전선」에 들어가는 조건으로만 내각과 국민회의에 자리를 얻었다. 제1항의 "탈레반의 격멸 이후"를 탈레반 정권의 붕괴로 해석한 것이다. 2016년에는 1980년대 루이나의 지원을 가장 많이 받았던 헤즈비 이슬라미의 굴부딘 헤크마티아르가 이 조항에 따라 민족조국전선에 들어왔다.

제4항의 "탈레반의 지도부"는 비공개 합의의사록 제6항의 별첨 명단 142명으로 특정되었다. 제5항에 따른 과도기 종료 선언은 2026년 현재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과도기가 25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루이나 안에서는 "과도도 아니고 민주도 아니다"라는 비판이 나온다.

5.13. 제12조 (마약) [편집]

제12조(마약)
당사국은 고랜드에서 마약의 원료가 되는 작물의 재배와 마약의 생산, 거래를 근절하기 위하여 협력한다.


협정에서 가장 지켜지지 않은 조항으로 꼽힌다. 협정 이후 양귀비 재배는 오히려 늘었고, 탈레반과 정부 측 지방 세력 모두가 마약 수익에 손을 댔다. 2009년 남부에서 양귀비 단속 경찰을 태운 트럭이 지뢰에 폭발해 23명이 숨진 사건 이후 단속은 사실상 멈췄다. 역설적이게도 고랜드에서 아편 재배를 전면 금지한 것은 2024년 탈레반 토후국이었다.

5.14. 제13조 (국제안보지원군과 제3국) [편집]

제13조(국제안보지원군과 제3국)
① 당사국은 국제연합이 고랜드의 치안 회복을 위한 다국적 군대의 파견을 결의하도록 협력한다.
② 당사국은 이 협정의 목적에 동의하는 제3국이 국제안보지원군에 참여하는 것을 환영한다.


2001년 12월 20일 유엔 결의로 국제안보지원군이 창설되었고, 2003년 8월 북랜드해협조약기구(NLTO)가 지휘권을 넘겨받았다. NLTO 회원국과 미합중제국, 유고랜드 등이 참여했지만, 이들은 벨포르 협정의 당사국이 아니어서 제4조의 체제 존중 의무를 지지 않았다. 참여국 가운데 일부는 고랜드 정부와 직접 관계를 맺지 않고 루이나를 거쳐서만 협력했다. 2022년 국제안보지원군의 재파병도 같은 틀에서 이루어졌다.

5.15. 제14조 (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참여) [편집]

제14조(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참여)
① 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이 협정에 부속된 의정서에 서명함으로써 이 협정의 목적에 참여한다.
② 부속 의정서는 이 협정과 불가분의 일부를 이룬다.


사비에트는 협정의 정식 당사국이 되지 않았다. 사비에트는 제5조의 공동 전선 의무에 묶여 루이나와 함께 싸우는 모양새를 원하지 않았고, 루이나 역시 사비에트를 고랜드 문제의 공동 보증국으로 인정하는 모양새를 피하고 싶어 했다.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가 부속 의정서라는 형식이다. 제2항의 "불가분"이라는 표현은 협정이 종료되면 의정서도 함께 효력을 잃는다는 뜻이어서, 루이나가 협정을 종료하지 못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5.16. 제15조 (협의) [편집]

제15조(협의)
① 당사국은 이 협정의 이행을 점검하기 위하여 매년 외무장관급 협의를 한다.
② 어느 당사국이라도 이 협정의 이행에 관하여 중대한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협의를 요청할 수 있으며, 다른 당사국은 30일 이내에 이에 응한다.


제1항에 따른 연례 협의는 「벨포르 협의」라 불리며 벨포르와 아바나에서 번갈아 열렸다. 2021년 이후에는 아바나 대신 마자르이샤리프에서 열리다가 2023년부터 다시 아바나로 돌아왔다.

제2항이 발동된 것은 한 번뿐이다. 2019년 2월 루이나가 전면 철수를 발표하자 고랜드 정부는 사흘 뒤 이 조항에 따라 긴급 협의를 요청했다. 3월 벨포르에서 열린 긴급 협의에서 루이나는 철수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을 뿐 결정을 바꾸지 않았고, 고랜드 외무장관은 협의장을 나서며 "벨포르에서 맺은 약속은 스무 해짜리였는가"라고 말했다.

5.17. 제16조 (유효기간과 종료) [편집]

제16조(유효기간과 종료)
① 이 협정은 기한을 정하지 아니한다.
② 어느 당사국이라도 다른 당사국에 서면으로 통고함으로써 이 협정을 종료시킬 수 있다. 이 경우 협정은 통고일부터 1년이 지난 날에 효력을 잃는다.


협정은 기한 없이 맺어졌고, 지금까지 어느 당사국도 종료를 통고하지 않았다. 2019년 철수 발표 때 루이나 의회 일각에서는 철수와 함께 협정도 종료해 공산 정권과의 관계를 정리하자는 주장이 나왔으나,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협정을 종료하면 사비에트의 부속 의정서도 효력을 잃어 사비에트가 탈레반과의 거래를 재개할 수 있고, 제3조 제2항의 제약이 풀려 탈레반 승인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2021년 아바나 함락 이후 같은 주장이 다시 나왔을 때 그래이 정부는 오히려 협정을 재확인했다.

5.18. 제17조 (비준, 발효, 정본) [편집]

제17조(비준, 발효, 정본)
① 이 협정은 각 당사국의 헌법 절차에 따라 비준되어야 하며, 비준서를 교환한 날부터 30일이 지난 날에 효력이 생긴다.
② 이 협정은 영어, 다리어, 파슈토어로 각 2부씩 작성하며, 세 언어 본은 동등하게 정본이다. 해석에 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영어 본에 따른다.

2001년 12월 5일 벨포르에서 작성하였다.
루이나 공화국을 위하여 로널드 캘러핸
고랜드 민주공화국을 위하여 무함마드 나지불라


비준서는 2001년 12월 20일 교환되었고, 협정은 30일 뒤인 2002년 1월 19일 1.19 사건 1주기에 발효되었다. 제2항의 파슈토어 본은 고랜드 측이 스스로 넣자고 한 것이다. 탈레반의 기반인 남부 파슈툰 주민들에게 협정의 내용을 직접 알리겠다는 뜻이었지만, 탈레반은 파슈토어 본의 제4조를 인용해 "공산주의자와 십자군이 서로의 체제를 지켜 주기로 맹세했다"고 선전했다.

6. 부속 문서 [편집]

6.1. 사비에트 부속 의정서 [편집]

벨포르 협정에 관한 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부속 의정서

제1조 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하 "사비에트"라 한다)은 벨포르 협정의 목적을 지지한다.

제2조
① 사비에트는 테러 조직과 탈레반에 무기, 탄약, 자금, 연료, 그 밖의 물자를 제공하지 아니하며, 이들과의 모든 교역을 중단한다.
② 사비에트는 자국 영역과 국경을 통하여 제1항의 물자가 테러 조직과 탈레반에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한다.

제3조 사비에트가 고랜드 민주공화국에 제공하는 군사적·경제적 지원은 벨포르 협정과 이 의정서에 의하여 제한되지 아니한다.

제4조
① 루이나 공화국과 사비에트는 고랜드 영역과 그 인접 지역에서 양국 군대 사이의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하여 상시 연락 체계를 둔다.
② 루이나 공화국의 군용 항공기가 사비에트와의 국경선으로부터 30킬로미터 이내의 고랜드 영공에서 작전하는 경우에는 이를 사비에트에 사전에 통보한다.

제5조 사비에트 영역을 통한 인도적 물자의 수송에 관한 사항은 관계국이 따로 정한다.

제6조
① 이 의정서는 벨포르 협정과 함께 효력이 생기며, 벨포르 협정이 효력을 잃는 날에 함께 효력을 잃는다.
② 이 의정서는 영어, 다리어, 러시아어로 작성하며, 세 언어 본은 동등하게 정본이다.

2001년 12월 5일 벨포르에서 작성하였다.
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을 위하여 미하일 인터루쇼프


사비에트가 이 의정서로 얻은 것과 내준 것은 분명했다. 제2조로 사비에트는 1990년대 내내 이어 온 탈레반과의 교역을 끊고 남부 국경을 닫았다. 대신 제3조로 고랜드 정부군에 대한 무기 공급을 계속할 권리를 확인받았다. 루이나가 제9조의 지원을 훈련과 비살상 장비로 제한하던 시기에 고랜드 정부군의 소총과 탄약, 헬기는 모두 사비에트에서 왔고, 루이나군 교관들은 사비에트제 무기를 든 병사들을 루이나식 교범으로 훈련시켰다.

제4조 제1항에 따라 아바나의 공동작전조정본부와 테르미스크의 사비에트 남부군관구 사령부 사이에 직통선이 놓였다. 「테르미스크 연락선」이라 불린 이 직통선은 루이나와 사비에트의 야전 사령부를 직접 잇는 상설 연락 수단으로, 20년 동안 3,000회 넘게 쓰였다. 제5조는 원래 인도적 물자만을 위한 조항이었으나 2009년 「테르미스크 수송 약정」으로 비살상 군수 물자까지 대상이 넓어졌다.

인터루쇼프는 서명식 뒤 기자회견에서 "사비에트는 루이나의 동맹이 된 것이 아니라, 고랜드의 동맹으로 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사비에트 국영 언론은 의정서를 루이나가 고랜드 민주공화국의 정통성을 뒤늦게 인정한 외교적 승리로 보도했다.

6.2. 비공개 합의의사록 [편집]

벨포르 협정의 이행에 관한 합의의사록
(비공개)

양국 대표는 벨포르 협정의 이행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양해한다.
1. 협정 제4조 제1항의 "헌법이 정한 국가 체제"는 고랜드 민주공화국 헌법이 규정한 사회주의 체제와 고랜드 인민민주당의 영도적 지위를 포함한다.
2. 루이나 군대는 사비에트와의 국경에 맞닿은 고랜드 북부 4개 주에 상설 기지를 두지 아니한다.
3. 공동 작전 중에 루이나 군대가 붙잡은 고랜드 국적의 억류자는 72시간 이내에 고랜드 민주공화국 국가보안부에 인도한다. 고랜드 국적이 아닌 억류자는 루이나 공화국이 관리한다.
4. 루이나 공화국의 정보기관이 고랜드 영역 안의 무장 세력 또는 정치 세력과 접촉하거나 이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경우에는 고랜드 민주공화국 국가보안부에 사전에 통보한다.
5. 루이나 공화국은 1978년부터 1989년까지 고랜드 민주공화국 정부와 사비에트 기업 사이에 체결된 광물 탐사·개발 계약의 효력을 인정하며,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다.
6. 협정 제11조 제4항의 "탈레반의 지도부"는 별첨 명단에 기재된 142명을 말한다.
7. 루이나 공화국은 고랜드 국적을 가진 사람이 루이나 영역 안에서 고랜드 민주공화국의 국가 체제 변경을 목적으로 하는 무장 활동을 위해 자금을 모으거나 인원을 모집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한다.

2001년 12월 5일 벨포르에서 작성하였다.
루이나 공화국 외무장관 헨리 A. 볼드윈
고랜드 민주공화국 외무장관 압둘 와킬


본문과 같은 날 오후 양국 외무장관이 서명한 문서로, 본문에 넣기에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약속들을 모아 놓았다. 캘러핸 정부는 이를 조약이 아니라 협정의 이행을 위한 행정 약정으로 분류해 상원에 제출하지 않았다.

각 항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제1항: 본문에서 피한 "사회주의"와 "인민민주당의 영도적 지위"를 명시했다. 루이나가 인정한 것이 막연한 "국가 체제"가 아니라 일당제 사회주의 체제였음을 보여 주는 조항이다.
* 제2항: 사비에트의 요구다. 루이나군은 이 조항 때문에 북부 국경 지대에 상설 기지를 두지 못했다.
* 제3항: 루이나는 고랜드인 억류자를 오래 붙잡아 둘 부담을 덜었고, 고랜드 정부는 탈레반 포로에 대한 통제권을 얻었다. 그러나 국가보안부의 수용 시설에서는 고문과 즉결 처형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 제4항: NIA가 고랜드 안에서 반공 무자헤딘 세력을 몰래 키우지 못하게 하려는 고랜드 측의 요구다. 이 통보를 받은 국가보안부가 NIA와 접촉한 지휘관들을 체포하거나 회유했다는 의혹이 뒤에 제기되었다.
* 제5항: 사비에트의 요구다. 이 조항 때문에 루이나 기업들은 2000년대 고랜드 구리·철광석 개발 입찰에서 사실상 배제되었다.
* 제6항: 제11조 제4항의 탈레반 지도부를 142명의 명단으로 못박았다. 물라 우마르를 비롯한 탈레반 핵심 인사들은 이 명단 때문에 민족 화해의 길이 처음부터 막혀 있었다.
* 제7항: 제4조 제2항 후단을 구체화한 조항이다. 루이나 정부가 2002년 반공 고랜드 망명자 단체의 모금 허가를 취소한 근거가 이것이었다.

6.2.1. 폭로 [편집]

합의의사록의 존재는 10년 넘게 알려지지 않았다. 실마리가 된 것은 2011년 10월 《아르시브》가 공개한 루이나군 작전 일지였다. 일지 곳곳에 "합의의사록 3항에 따라 인도"라는 표현이 되풀이되어 있었지만, 그 합의의사록이 무엇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아르시브》는 다섯 달 동안 추적한 끝에 2012년 3월 합의의사록 전문을 입수해 보도했다. 제보자는 협정 체결 당시 외무부 조약국에서 일했던 전직 관료로 알려졌다. 보도는 루이나 정계를 흔들었다. 보수 진영은 루이나가 공산 일당제를 문서로 인정했다는 제1항에, 진보 진영은 억류자를 고문 의혹이 있는 국가보안부에 넘기도록 한 제3항과 루이나 기업을 배제한 제5항에 분노했다. 제4항은 NIA가 1980년대의 옛 동지들을 공산 정권에 넘긴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상원 외교위원회는 2012년 5월부터 석 달 동안 청문회를 열었다. 캘러핸 정부에서 외무장관과 NIA 국장을 지낸 인사들은 합의의사록이 협정 본문의 해석과 이행 절차를 정한 문서일 뿐 새로운 의무를 만든 것이 아니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상원은 2012년 9월 "합의의사록 제2항과 제5항은 상원의 동의가 필요한 실질적 의무에 해당한다"는 결의를 채택했다. 결의는 구속력이 없었고, 합의의사록은 지금도 그대로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루이나 의회는 2013년 정부가 맺는 모든 비공개 국제 약정을 의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다.

고랜드 정부는 합의의사록의 진위를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사비에트 외무부는 제5항에 대해 "사비에트 기업의 정당한 권리를 확인한 것"이라는 논평만 냈다.

7. 추가 약정과 재확인 [편집]

협정 본문은 체결 이후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다만 협정을 보완하는 약정과 재확인 문서가 여러 차례 나왔다.
연도
문서
내용
2002
주둔군지위협정
제8조 제3항에 따른 지위 협정
2009
테르미스크 수송 약정
사비에트 철도로 비살상 군수 물자 수송
2015
교환각서
알 카흐프 여단을 별표에 추가
2022
벨포르 재확인 공동선언
협정 재확인, ISAF 재파병 근거

2022년 1월 19일, 1.19 사건 21주기이자 협정 발효 20주년에 루스탈지아 그래이와 압둘 와히드 라힘자이는 벨포르에서 「벨포르 재확인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탈레반에게 아바나를 내준 지 다섯 달 만이었다. 두 정상은 협정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 루이나가 고랜드 민주공화국 정부를 유일한 합법 정부로 계속 승인한다는 것, 제13조에 따라 국제안보지원군의 재파병을 추진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비에트 외무부는 같은 날 부속 의정서의 효력을 재확인하는 성명을 냈다. 이 선언을 바탕으로 2022년 3월 국제안보지원군이 다시 고랜드에 들어갔다.

8. 쟁점 [편집]

8.1. 2019년 철수 발표와 협정의 정신 [편집]

2019년 2월 루이나가 2021년 8월 31일까지의 전면 철수를 발표하자, 이것이 협정 위반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법적으로는 위반이 아니라는 데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 제5조 제2항은 협력의 방식과 규모를 각 당사국이 스스로 정하게 했고, 제8조 제2항은 주둔의 규모와 기간을 파견국이 정하게 했다. 협정 어디에도 루이나군의 주둔 의무나 철수 전 사전 협의 의무는 없었다.

그러나 고랜드 정부와 루이나의 비판자들은 협정의 정신을 문제 삼았다. 제5조 제1항은 탈레반이 "해체될 때까지" 함께 싸우기로 했고, 제6조는 루이나가 탈레반과 협상하지 못하게 막았다. 탈레반과 협상할 수도 없고 탈레반이 해체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루이나가 떠나는 것은 동맹을 전장에 홀로 남겨 두는 일이라는 것이다. 루이나 정부는 철수 이후에도 제3조의 승인과 제9조의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21년 여름 고랜드 정부군의 붕괴는 그 약속이 얼마나 공허했는지를 보여 주었다는 평가가 많다.

8.2. 제9조와 정치위원 조항 [편집]

고랜드 정부는 2002년 루이나 의회의 정치위원 조항이 제9조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루이나는 제9조가 "지원할 수 있다"고만 했을 뿐 지원의 의무를 정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법적으로는 루이나의 주장이 옳았지만, 7년 동안 동맹국 군대에 무기를 직접 대지 않은 이 조항은 고랜드 정부군이 끝내 제대로 재건되지 못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8.3. 제6조와 벨포르의 덫 [편집]

제6조가 루이나의 전쟁 수행을 묶었다는 비판은 2010년대 중반부터 루이나 학계와 군 안에서 널리 퍼졌다. 탈레반과의 협상 없이는 전쟁을 끝낼 수 없었지만, 협상하려면 고랜드 정부의 동의가 필요했고, 고랜드 정부는 탈레반과의 협상을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보았다. 이 구조에서 루이나가 택할 수 있는 출구는 끝없는 주둔과 협상 없는 철수 둘뿐이었다는 것이 「벨포르의 덫」론이다. 반대로 제6조가 없었다면 루이나는 2000년대 초에 탈레반 일부와 손잡고 공산 정부를 버렸을 것이고, 고랜드는 1990년대의 내전으로 돌아갔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8.4. 비공개 합의의사록과 의회 동의 [편집]

합의의사록이 상원의 동의 없이 맺어진 것이 정당했는지는 루이나 헌법학의 대표적인 논쟁거리가 되었다. 정부는 협정 본문의 해석과 이행을 정한 문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북부 기지 제한(제2항)과 광물 이권 보장(제5항)은 본문 어디에서도 끌어낼 수 없는 새로운 의무였다. 2012년 상원 결의와 2013년 비공개 약정 보고법은 이 논쟁의 산물이다.

8.5. 2021년 이후의 승인 문제 [편집]

탈레반이 아바나를 다시 점령한 뒤, 루이나 안팎에서는 탈레반 정부를 사실상의 정부로 인정해 인도적 지원 통로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제3조 제2항은 루이나가 고랜드 안의 어떤 무장 세력도 정부로 승인하지 못하게 했고, 협정을 종료하면 사비에트의 부속 의정서도 함께 사라지게 되어 있었다. 결국 루이나는 협정을 유지했고, 이것은 2022년 재개입의 법적 토대가 되었다. 비판자들은 20년 전에 맺은 협정이 루이나의 선택지를 스스로 없앴다고 지적한다.

9. 평가 [편집]

벨포르 협정은 냉전이 끝나지 않은 세계에서 루이나와 사비에트, 그리고 한때 루이나가 무너뜨리려 했던 공산 정권이 같은 적 앞에서 손잡은 문서다. 체결 당시에는 1.19 사건에 대한 응징을 위해 이념을 접어 둔 실용주의 외교의 성공으로 평가받았다. 협정 덕분에 루이나는 개전 두 달 만에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었고, 사비에트의 탈레반 지원 중단은 20년 넘게 지켜졌다.

그러나 협정이 루이나에 남긴 것은 끝낼 수 없는 동맹이었다는 평가도 많다. 루이나는 공산 정권을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도, 버릴 수도 없었다. 「과도 민주정부」라는 이름은 그 곤란함을 그대로 보여 준다. 루이나의 한 외교사학자는 이 협정을 두고 "가장 성공한 임시변통이자, 가장 오래 살아남은 임시변통"이라고 평했다.

고랜드 정부의 공식 역사서에서 벨포르 협정은 "세계가 고랜드 민주공화국의 정통성을 인정한 날"로 기록된다. 사비에트는 이 협정을 「냉전의 예외」라고 부르며, 사비에트의 원칙이 변한 것이 아니라 루이나가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10. 여담 [편집]

* 서명식 사진에서 캘러핸, 나지불라, 인터루쇼프가 앉은 탁자는 1.19 사건 뒤 대통령궁에 새로 들인 것이었다. NA145편이 대통령궁을 노렸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대통령궁 본관은 몇 달 동안 보강 공사를 했고, 서명식은 공사를 마친 직후 열린 첫 공식 행사였다.
* 협정 본문에서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은 제14조에 적힌 사비에트의 국호 한 군데뿐이다. 고랜드의 체제를 가리키는 말로는 영어 본에도, 다리어 본에도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
* 공동 표지 「초록 방패」는 루이나군 안에서 고랜드 파병 경험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참전 군인 단체 가운데에는 이 표지를 로고로 쓰는 곳이 있다.
* 고랜드 측이 보관하던 협정 원본은 2021년 8월 아바나 함락 때 외무부 청사에 남겨졌다. 탈레반은 9월 칸다하르에서 이를 공개 소각했다고 주장했으나, 고랜드 정부는 소각된 것이 사본이며 원본은 이미 마자르이샤리프로 옮겨 두었다고 반박했다.
* 마자르 각서에 가서명한 고랜드 외무장관 압둘 와킬은 1980년대 사비에트 점령기에도 외무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회고록에서 "1986년에는 루이나를 규탄하는 연설문을 썼고, 2001년에는 루이나와의 조약문을 썼다. 두 번 다 같은 책상에서였다"고 적었다.